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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한 왕 예수 | 김병수목사 | 2019-04-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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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스가랴9:9-12절 개역개정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죄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감격으로 맞이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듯이 주를 기뻐 외치는 날입니다. 호산나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입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소서” 우리를 영원한 죄에서 구원하여주신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의로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아다닙니다(벧전5:8). 사람이 죄인으로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죄를 범하는 범법자로 삽니다. 그 죄를 씻기 전까지 우리는 죄에 묶여 사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목적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환영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는 날입니다. 종려주일에 성도의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은 승리의 왕이십니다. 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요한복음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백성들이 흔드는 종려나무가지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왕의 승리를 축하하는 백성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왕의 길에 승리의 양탄자를 깔아 놓는 것입니다. 적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개선하는 왕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종려나무 가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분이 전쟁에서 이기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0절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싸움과 전쟁을 끊으시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예수님은 만 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작은 왕이 아니라 전능하신 왕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땅 끝까지 이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왕이시기에 진정한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분은 연약한 아기로 오셨지만 그 어께에 정사를 메었고,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땅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왕, 승리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은 4대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깁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완전한 인간만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 세계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왕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무엇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까? 그분이 흘리신 보혈의 피로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무엇으로 승리하십니까? 십자가로 승리하십니다. 본문 11절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하나님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갇힌 자들을 자유케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 어떤 죄도 예수의 보혈로 도말되는 줄 믿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를 멀리 옮기시는 능력의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시103:12).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우리를 적시었기에 죄와 사망이 우리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충분히 원수마귀의 손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다 멸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해지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며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세상의 위협과 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흉용히 뛰노는 죄의 파도가 삼키지 못하도록 우리를 굳게 지키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하신 왕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종려주일을 통해 위대한 왕의 등극을 알고 믿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물질과 사람과 환경과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평화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겸손한 왕이십니다. 본문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이유는 오직 성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이유는 ‘겸손하셨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생각하고 호산나를 외쳤지만 주님은 정작 왕이 결코 탈 것 같지 않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주님은 마음만 먹는다면 군마와 황제의 수레라도 동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친히 말씀을 따라 겸손의 왕으로 오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겸손은 그가 타신 나귀를 보고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인간으로 오신 것 자체가 겸손입니다. 인간의 형체를 입고 30여년을 사신 것 자체가 겸손입니다. 우리는 왕이 단 하루만 평민처럼 살아도 대단한 겸손 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물며 왕 중의 왕이신 창조주가 30여년을 사람의 형체를 입고 사셨으니 그 보다 더한 겸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겸손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빌립보서 2:6-7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창조주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초라한 나귀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의 위엄과 격식을 갖추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겸손으로 인간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하게 나귀를 타신 주님을 위해 수고한 무명의 사람을 잠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11:2-3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주님이 쓰시겠다고할 때 순종하고 보낸 나귀의 주인처럼 우리는 소유를 주장하고,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 붙들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내가 중심이 되고 주인이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 기간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주의 뜻을 성취하는 일을 위해 무명하나 주께 자신의 것을 드린 종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은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만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사랑하는 자들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려면 자기중심의 죄성을 벗어버려야만 합니다. 내가 머리가 되려는 내 우상을 먼저 깨야 합니다. 호산나 주님을 찬양하며 뒤따르다가 뒤돌아서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중심성, 자기우상, 자기명예를 깨뜨리지 못하면 우리는 혼란속에 빠집니다. 하는 일마다 원수를 만들고, 다툼과 허영으로 관계를 깨뜨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나를 세우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분열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의 마음을 품게 되면 언어가 겸손해 지고 행동 역시 겸손해 질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교우들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의 몸을 이루도록 하신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한 몸을 이룬 다른 지체들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다른 형제를 생각하고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귀를 타고 감람산을 넘으시는 주님으로부터 겸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면 때가 됐을 때 반드시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벧전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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