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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스런 복음 | 김병수목사 | 2019-04-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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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6:27-32절 개역개정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사람은 누구나 명예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 명예가 무너질 때 심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 상처를 통해 수치감을 느끼고 자존심에 상처받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한 간수가 그랬습니다. 본문 27절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자신이 지켰던 감옥문이 자기도 모르게 열렸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이 간수는 그동안 자신이 성실하게 지켰던 명예를 하룻밤에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키려했던 자존심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어 자존감에 상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전에 안전장치를 만들려고 합니다. 죽을만큼 고통을 주는 불명예를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찾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자기 장벽을 높이 쌓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가두어둘 성을 높이 쌓으며 살아갑니다. 나는 너에게 관심이 없으니 너도 나에 대한 관심을 끊으라고 말하며 경계선을 만듭니다. 내가 상처주지 않으려고 하니 내게도 상처주지 마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은 자기 방어벽을 쌓는 것보다 오히려 주변환경을 통제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환경을 짓누르며 철저하게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내 명예를 흔들지 못하도록 환경을 다르시는 성향을 갖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자기 벽을 쌓다가 나중에 대인 기피증과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는 사람은 나중에 통제가 안될 것이 두려워서 걱정하고 염려가 늘어나 범불안장애를 겪게 됩니다. 간수는 통제불능의 현실 속에서 허무, 허탈, 허망함을 느끼고 자살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통제하거나 자기 성을 높이 쌓아서 자기 명예를 지키고 수치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위험한 발상입니다. 인간은 환경을 스스로 통제하며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갈 수 없습니다. 환경을 다스릴만큼 사람은 완벽한 능력이 없습니다. 왜 복음인가? 왜 십자가인가? 첫째, 십자가만이 인생문제들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간수가 느낀 수치감, 불명예로 인한 자살 충동을 멈추게 한 힘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책, 불명예, 수치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와야 살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그 간수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30-31절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오늘 말씀에서 간수가 누구에게 손을 들었습니까? 그를 고용한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손을 들었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과 실라가 최후에 승리를 한 것입니다. 그를 죄인으로 송사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아닙니다. 그를 옥에 가둔 로마군인이 아닙니다. 둘째, 십자가 복음만이 승리를 안겨주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다스리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내가 세상 권력의 힘을 가진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면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십자가만이 주는 힘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람의 수치는 오직 십자가만이 감출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죄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사람의 죄책감, 수치, 불명예는 죄의 심각성을 말합니다. 그 죄의 무서운 영향력에서 벗어날 길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문제가 어디에서 풀리고 어디에서 승리가 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최후에 승리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있습니다. 인생의 승리는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복음의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결국 인생의 실패자요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휘하고 통치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런 승리가 주어지지 않고 허무하게 열려있는 텅빈 감옥만 남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믿고, 세상을 믿고 살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승리를 이끄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복음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도 없는 텅빈 절망만 남습니다. 예수와 떨어지면 어떤 인생의 열매도 없는 허무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쯤에서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인생의 최후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예수 안에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많이 맺힌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복음에서 이탈하면 허무와 절망만 남을 것이고 반대로 복음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십자가 복음만이 죄를 이길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죄의 용서 받은 복음의 확신이 필요합니까? 죄의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화력에 불붙으면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합니다. 몇일 전 강원도 산불이 엄청난 기세로 수많은 야산과 가옥을 삼켜버렸습니다. 간신히 몸만빠져 나올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여기저기 불통이 튀고 날면서 모든 것을 태웠습니다. 이것이 죄의 위력입니다. 죄의 화마는 우리의 영혼을 집어삼킬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면 큰 코를 다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죄의 위력에서부터 건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의 위력을 간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의 문제를 가볍게 취급하고 넘어가다가는 엄청난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죄는 완전히 불사를때까지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군종사병으로 복무할 때입니다. 이등병이라 군종사병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일병달기까지 1중대원으로 있었습니다. 육사출신 중대장님은 제가 다시 본부가서 교회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끈질기게 술을 권하셨습니다. 술 먹는 것이 죄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유혹을 간단하게 취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는 완전히 삼킬때까지 놓치 않습니다. 내 의지로 절대 이길 수 없는 유혹들이 많습니다. 술담배, 노름, 성욕, 물욕, 명예욕, 원수맺음, 자기중심주의... 이 모든 것을 내 의지로 맞서면 반드시 패하고 맙니다. 십자가를 붙들어야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화마가 흩고 지나간 상처가 얼마나 큰지 하나도 건질 것이 없는 잿더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작은 전선에서 튄 불꽃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작은 죄를 용납하면 그것이 번져서 온 생을 사르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죄의 화염에 휩싸이는 것은 하루아침에 번지게 됩니다. 작은 절도, 하얀 거짓말, 취미 도박, 술 한 잔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죄의 불이 번지면 온통 죄의 화마가 우리를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온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죄, 지협적인 죄가 한 번 타오르면 내 속에 있는 원죄가 활활 타오르는 불쏘시개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때는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위력 앞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대가지불에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입니다. 죄는 거뜬히 내 안전장치를 허뭅니다. 내 높은 안전장벽을 일순간에 허물어 우울증에 빠지게 할 것이고, 나의 통제력을 일순간에 허물어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넷째, 오직 십자가만이 대속, 속죄의 힘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예수님을 간수에게 소개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그 간수의 절망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간수는 무너진 명예, 산산조각난 자존심으로 죽고 싶었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알고는 허물어진 상처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불명예로 깨어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모든 상처가 치유된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가면 죽을만큼 고통스런 일이 작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태산같이 큰 죄의식이 소멸됩니다. 흉용이 뛰노는 분노가 잠잠해 집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풀어줄 능력이 오직 주님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속죄, 대속의 은혜입니다. 지난 1월에 노르웨이 억만장자 부인이 괴한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그들은 거액의 몸값으로 1천만달러, 한국돈으로 112억을 요구했습니다. 남편은 그의 자산의 10분의 1이나 되는 거액을 아내를 위해 준비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 거액을 내 놓을 용의가 있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이것이 아내의 몸값이라면 기꺼이 내겠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떨고 있는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거액을 마다하고 준비한다는 소식을 아내가 들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우리들의 몸값을 위하여 예수의 생명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공짜로 받은 것이지만 그 희생은 창조주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하여 지불한 값입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그 속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엄청난 값을 지불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 신앙을 확신하십시오.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내가 복음을 확신한다는 것을 언제 알 수 있습니까? 고난을 받을 때입니다.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바울은 복음을 전하가다 끌여와 감옥에 갇힌 현실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비록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끝날까지 지켜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최후에 승리를 준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 때문에 바울은 고난 중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확신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지키다가 당하는 고난, 멸시, 천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갖힌 신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찬양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본문 25-26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옥에 갇혀 부끄러운 죄인이 되어 사슬에 묶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바울은 환란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며 찬송합니다. 그 때 감옥의 터가 흔들리며 옥문이 다 열리고, 자신을 매인 것이 벗어졌습니다. 세상은 당장 눈에 보이는 대로 산다고 승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당장 네 눈에 보이는 데로, 세상이 이끄는 대로, 권력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대로 살면 지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점치는 여종의 주인인 사람은 복음을 지키다가 감옥 가는 바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승리했다고 여겼습니다. 십자가 신앙에 참여하십시오.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내 몸에 짊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을 멀리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36-37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세상은 쫓는 자가 이기는 것 같고, 힘을 가지고 끌고 다니면 이기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세상은 섬기면 지는 것이고, 낮아지면 지는 것이고, 양보하면 지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는 길과 정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며 쫓기며 끌려 다니는 예수님이 졌다고 말합니다. 당장은 십자가가 부끄럽고, 창피해 보이고, 패한 것 같으나 십자가를 붙드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300년 후에 로마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고, 십자가에 함락된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당장의 명예를 지키고 세상 권력의 승리에 도취되면 끝날에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낮은 곳에서 섬기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당하는 수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약함을 자랑할 수 있는 성도가 많아질 때 교회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것을 자랑합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멀리하고 멸시하고 세상 힘, 권력, 부귀에 취해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으십니까? 복음의 편에 서기 위하여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까? 섬기기 위하여 멸시를 받고 있다면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바랍니다.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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