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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을 누리는 삶 | 김병수 | 2019-03-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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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합니다. 누가 짧은 인생을 살고 끝나기를 바라겠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찾아와 묻습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습니까?” 지식이 있는 율법교사도 “어떻게 영생을 얻습니까?” 젊고 돈이 많은 부자 청년도 영생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찾습니다. 종교를 떠나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들은 영생의 길을 찾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이미 영생을 보장 받은 줄 믿습니다. 영생은 무엇을 해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믿으면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영생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우리가 세례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영생을 얻은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영생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간을 길게 늘여서 영원토록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영생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불행한 것입니다. 지금같은 삶이 연속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영생은 예수를 믿어 완전한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롭게 되지 않으면 영생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죄입니다. 죄가 영생의 길을 가로 막는 것입니다. 본문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죄는 무지입니다. 지식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죄가 가로막아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중지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아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면 길이 없는 것입니다. 죄가 가로막고 서서 하나님, 예수님을 알지 못하게 하여서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영생을 누리고 살다가 죄로 인해서 눈이 어두워져서 영생의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빼앗긴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만든 죄가 영생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되찾아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무엇이냐하면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본문 2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를 아는 일에 실패(무지)하면 영생 길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단은 어둠의 영입니다. 생각을 못하게 합니다. 무지하게 만들어서 말씀에 대해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정말로 주의해야할 말은 “그냥 믿으라”는 것입니다. 생각할 것 없이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따르려면 알고 따라가야지 눈감고 따라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을 속속들이 아는 것을 말합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수박겉핡기 식으로 알면 안됩니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안다는 것은 아주 친밀한 상호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부부 정도가 되어야 서로를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속속들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신부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겉모습을 보고 말합니다. “야 그런 신랑 없다.” “살아봐라. 그런 신랑 없다.”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깊은 교제가 없으면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피상적인 겉모습만 알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압니까? 예수님을 얼마나 압니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얼마나 압니까? 그래서 성령이 오셔서 불을 밝히셔서 예수님을 명확하게 밝게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지식의 영, 지혜의 영이십니다. 어둠을 물리치도록 복음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는 일을 하십니다. 성경공부하는 것은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물리치는 일입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 즉 예수를 안다는 것은 단지 세상 지식,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알고 배우는 것을 공부하고 학문을 쌓는 일로 생각하므로 사람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우는 것은 힘들고 귀찮은 일입니다. 본성적으로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은 믿는 것이지 배우는 것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아는 일에 학자의 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영생을 가로막는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에 빠지면 사람은 영생을 못봅니다. 영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말씀을 지킴으로 우리는 영생을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영생은 지금부터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먼 미래의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 누려야 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맛보며 누리며 사는 길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상에 빠지면 왜 영생의 길이 보이지 않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부유한 유대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율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고 성전을 섬기기 위하여 헌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가정에 복을 주셔서 부유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그는 정말로 영생을 맛보기를 원했습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마가복음 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이 그 청년이 영생을 맛보기 위하여 여러 가지를 점검하십니다.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사기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모든 율법들을 다 지켰느냐? 네 지켰습니다.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 그는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철저한 유대인 신앙교육을 받은 청년이었습니다. 본문 21-22절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는 많은 재물이 그 청년의 우상입니다. 많은 재물이 그의 자존심이며 생명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아도 재물 없이는 못살기에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 우상이 청년이 영생으로 나가는 일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서서 떠났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 우상을 내려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요구사항은 매우 비현실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청년의 입장에서보면, 예수님은 영생을 누리기 위해 나의 행복을 내려놓으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신 것입니다. 영생을 누리는 일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기에 근심하며 갔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우상을 내려놓아야 한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상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상은 아주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핸드폰 첫 화면에 넣고, 온통 그의 마음에 그 우상이 자리합니다. 잘생기고, 멋있고, 매력 있는 모습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 하려는 것입니까?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비현실에 빠져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현실적인 분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현실을 떠나 천국에서만 필요한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자 청년이 비현실적입니. 물질의 우상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청년이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비현실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현실에 눈을 떠나 보이는 나라입니다. 물질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이 불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에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이 재산을 다 팔고 가난한 선비처럼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상을 버려야 현실에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권을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행운을 바라는 것입니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한 방 터질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노름도 그렇습니다. 주식에 빠지고 노름에 빠진 사람들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목사님 잠시 즐기는 것이지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씀하십니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는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복권, 노름, 주식이 주는 즐거움이 성경을 배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는 것보다 좋다면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100여년 전에 이곳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제일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비현실을 깨고 우상을 쓰러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조선인들은 일제 강점기를 보내면서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술과 담배로 찌들어 살고, 노름과 도박에 빠져 살았습니다. 현실이 너무 힘이드니까 실제 삶으로부터 피하고 두려움으로 도망간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우상에 빠져야 괴로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이 교회에 오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한 일이 술과 담배, 노름을 금지시킨 것입니다.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영생을 누리는 길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비현실적이고 세상모르는 분의 뜻이라고 여기십니까? 좋은 성도는 믿음을 쌓고 지식을 축적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인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야 우상이 우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행운을 따르지 마세요. 비현실적인 우상에 취해 살지 마세요. 무책임하게 세월을 허비하지 마세요. 우상이라는 비현실적인 생활에서 돌아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생활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하나님을 잘 안다고 고백은 하는데 행동하는 것은 말씀과 반대되는 길을 가는 것이 위선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안다고 말만 떠드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늘 함께 합니다.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른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고백만 있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행위가 없으면 그 믿음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해보면 그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요한일서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교회를 사랑하는 것도 알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워서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교회를 세워야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믿음은 지식을 바탕으로 사는 것입니다. 경험이 바탕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의리가 바탕이 아닙니다. 내 자존심이 바탕이 될 수 없습니다. 내 헌신이 바탕이 아닙니다.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힘을 줍니다. 세상을 이길 힘을 줍니다. 베드로는 자기명예라는 우상에 빠져 살다가 예수님을 안 후에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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