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홈 >
  • 설교/ 찬양 >
  • 주일설교
주일설교
화목의 사명 김병수목사 2019-03-10
  • 추천 0
  • 댓글 0
  • 조회 482

http://xn--2n2bp6e73j1yd.com/bbs/bbsView/14/5560293

[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7-19절 개역개정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순절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오늘부터 시작해서 부활절 전까지 예수님의 행적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이 기간에는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신앙성장과 신앙훈련을 통해 믿음을 격상시키는 절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집중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을 영어로 Lent라고 하는데, 그 뜻이 “봄”이라는 말입니다. 사순절이란 의미의 봄은 생명을 말합니다. 한 겨울을 지난 후 봄은 땅에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 생명을 심어 살아나게 하시는 봄의 계절을 세우셨습니다. 이 사순절 Lent, 봄의 절기를 맞아 여러분의 가정위에 예수생명, 예수체험, 예수구원의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모든 얼어붙은 경제, 연약해진 건강, 굳어버린 관계가 예수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한 관계가 되도, 모든 인간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어 화목한 가정같은 교회를 세우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수많은 갈등과 충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갈등이 싫어 피해 버리고, 어떤 사람은 부주의하게 그 갈등과 충돌을 다루다가 관계의 깊은 골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 충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행복한 관계를 만들지 불행한 관계를 만들지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삶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갈등, 충돌들을 풀고, 화목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19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화목의 사명을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봄의 절기 사순절 기간에 이룬 화목의 사명을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얼어붙은 관계를 녹여서 화목의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까? 그 화목의 길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이 되셨습니다. 본문 21절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순결하신 분인데 죄인 되신 이유는 모두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의롭게 세우시기 위하여 죄를 뒤집어쓰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죄인 되셨습니다. 이것이 말이 쉽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자존심이 무너지는 아픔입니다. 요한복음 19:9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이 죄 없이 법정에 섰습니다. 심문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등을 만들기 위하여 질문합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어느 지방 출신이냐? 시골출신이 왕이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데 너 출신이 어딘데 왕이라고 하는거냐고 묻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무응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자존심을 건드린 참기 힘든 순간에 침묵한다는 것은 보통 고통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사람이 가장 참지 못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내 ‘자존심’을 건드는 것입니다. 화목을 깨뜨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찾아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추어내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평정심을 깨뜨립니다. 이것이 화목을 깨는 사단의 전략입니다. 화목을 깨는 지름길이 자존심을 긁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평정심을 깨뜨리는 전문가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결백을 주장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관원들의 의도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올무를 걸기 위해 예수님이 하는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를 내거나 말 실수를 하거나 자기 변명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변호하는 과정에서 말의 실수를 찾아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므로 말도 안 되는 일로 다툼을 일으키는 자에게 변명하는 것은 곧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목을 이루는 일이 더 중요했기에 자존심 상하는 일따위는 이겨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존심 상하는 일 앞에서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변호하고 방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쓸데없는 말로 시비를 거는 자 앞에서 일일 변호하면서 상황을 어떻게 해서라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복음을 지키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비난하는 자 앞에서 어린 양처럼 끌려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왼뺨을 치는 자에게 오른 뺨을 대셨습니다. 링컨은 많은 반대자들을 이겨내고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어떻게 리더십을 가지고 나라의 최고에 올랐는지를 연구한 도널드 빌립이란 사람이 중요한 링컹의 습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링컨은 많은 가혹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하여 반대자들이 하는 잘못된 말들을 다 기록에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편지에 일일이 다 기록해 봅니다. 그리고 여러번 읽어봅니다. 거기에 잘못되거나 오해가 없었는지를 정확하게 편지에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지 링컨은 스스로 쓴 그 편지를 읽으면서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토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했습니다. 여러번 읽고 나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모습과 같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원수들의 무고한 송사를 당하면 그것을 일일이 기록해서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가지고 가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변호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다 아뢰었습니다. 시편에 그런 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윗은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토하였습니다. 시편142:1-2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다윗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사람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토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상황을 다 진술하고 나면 하나님이 원한을 다 풀어 주십니다. 누가 나를 속상하게 하면 스스로 원한을 품고 원한을 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풀어주세요하고 아뢰면 하나님이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이 피난처이십니다. 일일이 사람을 찾아갈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변호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길을 여십니다. 사단은 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을 앞 세워서 분열하도록 만드는 전문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평정심을 일고 비방하는 말로 다투게 되면 사단이 제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화목을 깨고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성도가 화내도록 말다툼을 일으키도록 자꾸 부추기는 것입니다. 거기에 넘어져서 화를 내면 본질적인 문제는 이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사단이 들추는 것은 ‘성격 더럽구나’ ‘참을 성이 없구나’ ‘너 불안하구나’ ‘큰 일하기는 어렵겠구나’ 이렇게 또 공격하여 들어옵니다. 디도서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싸움을 거는 자, 나를 비방하는 사람은 지금 화목을 깨기 위하여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목을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절대 깨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의 화목입니다. 정말 화를 내야 할 것은 복음을 훼손할 때 화를 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훼손할 때는 당당하게 맞서서 싸우세요. 나를 위해서는 싸우지 마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은 잊을 수 없다는 각오로 맞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대한 왕으로 쓰신 이유는 자기를 위해서는 침묵했지만 하나님의 영광된 이름을 위해서 용기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용기를 내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싸우는 용기가 있어야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키는 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원수와 싸우셨습니다.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오늘 우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내 자존심의 문제이면 피하세요. 침묵하세요. 나를 방어하기 위하여 불화에 끼어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작은 일 때문에 큰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위하여 내 작은 성이 무너지는 것에 분을 품을 맙시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분을 품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허무는 이단들을 향하여 분을 품읍시다. 교회를 허물고 싸움과 다툼으로 교회를 흔드는 음부의 권세와 싸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서서 교회세우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처럼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복음에 든든히 서면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흔들려고 교회는 견고하게 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나를 변호하고, 내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화목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 중요하고 거룩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복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단은 오늘도 우리가 복음을 불신하여 하나님과 불화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너의 은행의 잔고가 위태로운 것은 너의 삶에 믿음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다” “하나님 말씀을 지킨다고 외로운 처지가 된 것은 너의 인간관계 자체가 잘못된 것을 말한다” “내가 만족할 만큼 일하지 않았으니 더 일을 열심히 해서 천국가야 한다” “네가 지금 되는 일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당하고 있는 엄청난 고난의 현실은 하나님이 아무런 힘도 없고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 증거다” 아니다. 이러한 복음을 왜곡하는 말들 앞에 ‘아니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에게 잘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몸 된 교회들이 아픔과 분열의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 때문에 근심을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연령의 차이가 있고, 신앙의 노선이 다르고, 주장하는 것의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몸을 분열시켜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내가 선택을 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분열을 시키고 몸을 나누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하나님이 이루신 은혜 운영자 2019.03.22 0 494
다음글 이스라엘이라 부르리 운영자 2019.03.05 0 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