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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주는 기쁨 김병수목사 201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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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복음이 주는 기쁨

요한복음 15:9-12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한 미국의 심리학자는 우리의 삶은 습관의 덩어리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많은 부분이 습관에 의해서 행동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멍한 표정으로 치약을 짜고, 습관적으로 밥을 먹고, 일터로 나가서 습관적으로 일하다가, 스트레스 받으면 담배를 물고, 집으로 돌아와서 습관적으로 소파에 앉아 TV보는 습관으로 하루를 마감합니다. 한 대학에서 연구진이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행동하는 40%가 습관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내 의사결정과 상관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정말 로봇처럼 내 의식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저절로 움직인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된 예배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고 하셨는데 우리는 지금 이 예배를 습관적으로 드리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습관적인 예배가 아니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까?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당을 나가면서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한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떠나면서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다면 오늘 우리는 습관적인 예배, 종교적인 행위로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이 습관을 이기는 힘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힘입니다. 복음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채워집니다.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복음을 발견한 성도는 삶에 만족과 기쁨을 누립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으로 사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직도 우리는 습관의 벽을 깨지 못하고 갖혀 사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우리들의 영혼을 죽입니다. 아주 무서운 내 믿음의 적입니다. 습관적인 신앙은 죄에 끌려 다니며 의식이 없이 따라다니고 조정되는 것도 모릅니다. 습관에 빠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두려움입니다. 한 번 습관이 되면 그 것을 깨는 것이 두려웁게 됩니다. 술담배도 그렇습니다. 습관화되면 절대 깨지 못합니다. 누구나 나쁘다는 것을 알고 깨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두려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 안되저항하다가 끊을 필요 없어타협로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저항을 멈추고 습관적인 믿음으로 타협점을 찾은 사람은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적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길을 가면서 과거의 습관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하나님과 주의 종 모세에게 원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과거에 먹던 습관, 살던 집 모든 것이 다 사라졌고 새로운 길을 가니 얼마나 불편합니까? 습관을 벗어나서 죽겠다는 것입니다. 종살이 시절의 과거의 기쁨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왜 애굽에서 누리는 기쁨이 없었겠습니까?

 

왜 과거에 우리가 누렸던 기쁨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과거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준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더 높은 차원이 있습니다.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세상이 주는 기쁨보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기쁨은 잠깐의 기쁨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새집을 사고 새차를 삽니다. 몇 달 갑니까? 더 큰 집이 보이고 더 좋은 신차가 지나가면 다 사라질 기쁨입니다. 우리는 빼앗길 기쁨, 사라질 기쁨, 잠깐의 기쁨, 값싼 기쁨에 현혹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라고 여기며 삽니다.

 

세상의 기쁨은 그 끝이 씁니다. 세상은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기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패와 좌절과 배신만 당하는 것입니다. 죄가 주는 기쁨은 쓴 열매입니다. 세상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부족하기에 조급하게 만듭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인해 더 약이 올라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잘못된 오기가 생기게 됩니다. 내가 채워보겠다고 장담하고 더 내 시간과 물질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채워지지 않는 배신감을 느끼고 허무함으로 눈물을 짓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자유를 빼앗습니다. 세상의 기쁨은 다 묶이게 합니다. 돈에 묶이고 사람에 묶이고 죄의 결박에 묶이게 합니다. 처음에는 단 것 같으나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 드는 것입니다.

최근에 강남에 버닝썬술집 사건으로 시끄럽습니다. 경찰이 연루되었습니다. 청소년에게 술을 팔도록 눈을 감아준 경찰이 점점 뇌물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경찰복을 벗고 버닝썬의 이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작은 기쁨에 취하여 갔다가 인생의 낭패를 맛본 사람들을 봅니다. 나의 기쁨을 위해 다른 사람의 기쁨을 빼앗아 살아가는 추락한 경찰을 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봅니다.

 

현실에 묶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한 플라톤의 동굴비유가 있습니다. 죄인들은 사슬에 묶여 캄캄한 지하동굴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고개를 돌릴 수도 없이 등 뒤에서 비추는 빛에 의해 보이는 그림자만 보고 삽니다. 그 중에 한 죄수가 풀려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찬란한 햇볓을 쪼이고, 잔디 밭을 거닐며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니 기쁨에 겨워 춤을 추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죄수가 지하동굴 감옥으로 돌아가서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같이 나가자. 세상은 너무 행복해, 그곳은 기쁨이 넘치는 곳이야. 그 때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외칩니다.

너나 가서 잘 살아

일어나 따르면 되는데 실패가 두려워서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하 어두운 동굴 속에 쭈그리고 떨고 있는 나의 모습을 떨치고 담대하게 나갈 용기가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후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기쁨이라는 것이 천 날을 누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과거에 느꼈던 기쁨이 사라지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용기를 가지고 놓으면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복음이신 예수를 붙들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리스도와 견고한 연합을 이루어야 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0-11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의 주인이었지만 주일이 되면 언제든지 자기 고향인 조지아주 플래인스(Plains)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학교 교사일도 했습니다. 백악관에서도 얼마든지 목회자를 초청해서 멋진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왕궁에서 주인처럼 예배드리는 것보다 작고 초라한 성전이라도 주님이 주인 되시는 주의 궁정에서 문지기 위치에서 예배드렸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준비 중인 카터 후보가 어느 주일에 플래인 고향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고 있는데, 잔디밭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만약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의 헌법과 하나님의 법이 상충될 때 무엇을 따르겠습니까?” 카터는 햇살을 받으며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 기자들은 수첩에 쓸 준비를 하며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법이요카터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어리석은 말입니다. 이 작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다고 미국 대통령이 되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한 말을 할 수 있었는가? 카터 참모들은 그가 정신이 나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카터는 하나님 사랑에 빠져 정신이 나간 것이지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터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소원을 성취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으로 인해 카터를 응원하는 교회는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경험을 하게 되어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복음은 말씀앞에 서면 깨끗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뻣뻣하면 아직 멀은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기 위하여 식탁 위에 잔을 준비합니다. 그 잔이 깨끗하게 씻어진 상태로 비워져 있으면 맛있는 차를 채우게 됩니다. 그런데 잔을 가지고 왔는데 안에 이물질이 끼어 있고 더러우면 거기에 아무것도 넣고 싶지 않습니다. 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깨끗하게 씻으면 성령의 생수가 채워져서 죄의 유혹을 물리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유혹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죄악에 물든 이 사람이 신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세상의 기쁨을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사도들은 두려운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복음을 외쳤습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면 답이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이 아무리 거세게 위협하여도 성령 충만한 성도는 복음이 답이라고 외칠 용기를 갖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답은 예수님이다고 고백하고 나갑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주가 길을 여실 것을 믿고 담대히 인생을 개척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흉용이 뛰노는 바다에 길을 여셔서 마른 땅을 밟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나갈 용기를 갖습니다. 이 믿음으로 나갔기에 때가 되어 로마제국이 예수 앞에 두 손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왜 필요합니까?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아가 죽어야 주님이 산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산다. 내 욕심이 끝나야 주님이 일하신다.”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축복의 아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죄에서 돌이키는 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돌아서면 됩니다

담배를 한 번 끊는 방법이 있습니다. 피고 싶을 때 부러뜨리면 됩니다.

술이 먹고 싶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술을 싱크대에 부어 버리면 됩니다.

그 한 순간이 중요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죄의 유혹에서 돌이키다보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매번 이렇게 합니까? 내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술 담배를 끊으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치고 기도하고 울기도 했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 유혹 앞에서 번번이 무너지는 내 자신이 실망스럽고 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나중에는 죄와 타협해서 사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굳게 잡고 도와주세요기도하세요. 그러면 성령님이 찾아 오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는 못해도 주님은 하게 하십니다고백하세요.

 

우리가 세상의 기쁨을 놓기만 하면 안되고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 안에 사는 기쁨을 누리는 성도, 복음이 주는 행복을 아는 성도는 죽음과 사망권세를 이긴 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본문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맞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기쁨에 연연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이 기쁨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십니다.

 

세상의 값싼 기쁨에 값진 기쁨을 팔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세상과 동일한 기쁨으로 웃음짖지 않을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의 기쁨에 취하여 산다면 우리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지금 잠시 근심하더라도 두렵더라도 빼앗기지 않을 기쁨, 영원한 기쁨, 값진 기쁨을 붙들면 마지막에 웃는 최후의 승자로 남는 것입니다.

 

 

 

습관의 두터운 벽을 깨뜨리고 기쁨으로 나가려면 새로운 각오가 필요합니다. 내가 그동안 기쁨으로 여겼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해서 그렇게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내 기쁨이라고 여긴 것들을 놓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기쁨은 부족’(lessness)하기 때문입니다. 그 부족한 부분은 아쉬움을 줍니다. 온전하지 못한 기쁨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더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영원한 기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왕궁에서의 천 날과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의 가치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주는 기쁨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주님과 함께 있는 것과 비교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천국 같은 모양을 한 악인의 장막에서 천 날을 사는 것보다 거룩하신 주님을 섬기는 한 날이 훨씬 가치 있다고 여겼습니다. 악인의 장막은 화려한 궁전일 수 있습니다. 화려한 불 빛을 반사하는 조명기구 아래서 금잔을 부딪치며 매일 연회 잔치를 벌이고, 나라를 통치하는 어명을 작성하고 도장을 찍으며, 정적을 치기 위해 치밀한 작전회의와 훈련이 잘 된 군사들을 무장시키고, 적군에 군사를 파견하여 승리한 후 거둬들인 수 많은 전리품들을 하늘로 던지며 승리를 환호하는 왕궁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기쁨이 충만한 곳이었으나 마음 한 구석에는 허무함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반대로 주의 궁전은 악한 장막과 달랐습니다. 주가 계신 성전은 언제나 그를 사랑으로 맞아 주었습니다. 미친 듯이 들려들어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하여 다윗이 허겁지겁 피하여 들어간 곳이 놉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누구하나 의지할 것 없는 상황,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성전을 황급히 뛰어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제사자 아히멜렉은 쫓기는 다윗에게 성전의 떡을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였던 골리앗의 칼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의 허기진 배가 채워졌고, 그의 연약한 팔에는 거대한 무기가 쥐어졌습니다.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성전으로 들어갔으나 또다시 악한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을 얻은 채 나왔습니다. 그는 성전을 나서면서 이제는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 나를 도우시는 주의 궁전이 나에게 열려 있다.” 성전에서의 짧은 시간을 통해 다윗은 세상을 다 얻은 용기를 얻고 세상으로 뛰어 들어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세상에서 악인의 장막과 거룩한 성전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왕궁에서 경험하지 못한 용기, 뿌듯한 기쁨이 그에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1000일이 거룩한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성전의 한 날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전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채우게 됩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갖는 기쁨으로 채워지고 세상과 같아지는 곳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줄 수 없는 기쁨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 가치가 살아 있는 믿음, 삶의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말씀의 예배를 드리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으로 나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르다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엌 일을 폄하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 앞에서 정신이 나간 마리아처럼 은혜의 자리에 언제 나갔었던가? 그 은혜의 자리를 떠나 부엌 일로 분주해 나를 돕지 않는 자들을 원망하는 마르다는 아닌지요? 접지를 들고 기름지고 연기 자욱한 주방을 나와 복음의 말씀에 매료되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마리아가 되어야겠습니다. 미쳤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말입니다. 복음의 기쁨,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정신 나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더 좋은 일을 선택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흠뻑 빠질 용기가 있어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의 기쁨에 빠져야 자신의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향유를 붙고 십자가를 수종 드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을 행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의 일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0:41-42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무리 잘 살아도,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아무리 학식이 뛰어나도 답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사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불안에 떠는 것입니다. 그러나 쫒기는 다윗은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안하였습니다. 그 평안은 지식도, 명예도, 지위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답을 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분의 말씀에 거하면 오는 평안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답이 있으니까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것이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은 아직 세상을 모르십니다. 그 답은 교회에서 하는 말이고, 세상에서는 안 통한다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살면 답이 아니라 밥입니다. 무시당한다구요. 복음이 어떻게 답인가요?”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도 세상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이것이 죄의 아래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죄가 없었을 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기뻤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거역한 죄를 지은 후에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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