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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기적의 돌항아리 | 김병수목사 | 2019-02-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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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주일오전예배 기적의 돌항아리 요한복음 2:2-5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본문배경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2절). 그런데 결혼식 연회석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가 생겼습니다(3절). 본문 2-3절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결혼 연회석에서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잔치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흥이 사라지고 함께 교제할 남자들이 기분이 상하여 곧 떠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난 후에 준비성이 하나도 없는 소문만 무성한 잔치였다고 두고두고 핀잔을 들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정을 알기에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와서 다급한 어조로 도움을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요청을 받고 조금은 당혹스럽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4-5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이 상황을 잘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디를 가서 제자들과 함께 술을 거두어 오든지, 한 번도 베풀어본 적 없던 기적을 일으키든지 무엇인가를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귀띔을 해 줍니다. 본문 6-7절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예수님이 돌항아리를 선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돌항아리는 유대인들이 정결의식을 할 때 손을 씻던 물을 담아놓는 용도로 쓰던 물을 담은 그릇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지은 죄를 씻기 위하여 사용하던 물항아리입니다. 그곳에서 정성껏 손을 씻고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리며 죄를 씻습니다. 유대인들은 정결의식에서 더러운 손, 먼지 묻은 손을 씻는 돌항아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돌항아리를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는 주에도 성전에 나가서 “저 항아리물에 내 더러운 손을 씻어야겠군” 유대인들에게 물이 담긴 돌항아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원을 받으려면 손에 지문이 다 달아 없어질 정도로 씻고 일하고 씻고 씻고 씻어야해. 그들에게 구원은 은혜가 아니라 내 공로가 쌓인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공짜의 은혜를 내 공로로 바꿔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로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매번 씻는 손이 왜 이리 또 더러워지는지 몰라. 씻어도 씻어도 죄가 씻기지 않고 더 더러워지는 내 손.” 아무리 깨끗하게 앃으려고 해도 매번 제자리에 돌아오는 허무한 느낌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매번 예배를 드리면서도 깊은 자책감과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노력으로 아무리 죄를 씻으려고 해도 지울 방법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드린 헌신이 내 죄를 씻지 못합니다. 힘에 지나도록 드린 재물이 내 죄를 속죄하지 못합니다. 내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 교회 일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무엇인가로 채워지기 보다는 허탈한 감정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으로 빗어낸 기적의 포도주는 그 항아리에서 잘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손수 만드신 포도주를 항아리에 담으셨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사람들에게 가지고 가라고 하십니다. 본문 7-8절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복음이신 예수님이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혼인잔치에 초대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실제적인 삶의 혜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교회에서만 믿는 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일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자들의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외로움에 치를 떨고 홀로 나무에 오른 삭개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 삶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자들의 팔을 붙잡으시는 예수님, 분노한 대중들에게 끌려 다니며 살 소망이 없던 간음한 여인의 살 길을 여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지나는 길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면 살아나고, 옷깃만 스쳐도 병이 나았습니다. 미국의 백악관은 저절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 백악관의 주인 중에 위대한 신앙의 선조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는 10세에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의 유언을 기억합니다. “에이브라함아 내가 물려줄 것이 이 낡은 성경책뿐이지만 기쁘게 너에게 준다. 에이브야! 너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마지막 부탁이다” 아브라함은 어머니의 유언소리가 일평생 마음의 울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변호사로 있었을 때부터 그를 무시하고 모욕하던 에드윈 스탠던이라는 정적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아브라함을 무시했던지 외모와 옷차림까지도 조롱거리로 삼았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고릴라를 만나려면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도 에드윈은 링컨을 반대하는 당에서 비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다고 떠들었습니다. 이런 심한 말을 듣고도 링컨은 그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합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말이 많았지만 링컨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수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없애 버려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원수를 죽여서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으로 녹여 친구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나의 원수가 아닙니다. 나는 적이 없어져서 좋고, 그처럼 능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남북전쟁이라는 난국을 이겨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죠” 링컨이 만일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어떻게 그의 삶을 이겨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암살자에게 죽을 때에 스탠던은 링컨을 부둥켜 앉고 말했답니다.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예수님이라는 분을 만난 자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힘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들의 인생에 모든 문제를 아시고 인도하십니다. 인생의 실패를 경험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이겨낼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초라한 물항아리가 극상품 포도주를 담는 신비한 항아리가 됩니다. 본문 9-10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님은 인생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에게 답이 되십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낭패를 맛보아야 하는 시점에서 예수님이 함께 하셨을 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포도주 맛을 보게 하십니다. 이 인생역전이 예수님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내 삶에 실제적인 기쁨을 줍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한 사람에게도 예외가 없는 기쁨을 누가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모두를 살리는 길을 아시고 지혜를 가지십니다. 사람에게는 복음이 없습니다. 사람이 고안해낸 만족은 한 쪽이 기뻐하면 다른 한 편은 울게 되는 것입니다. 연회장은 물이 변하여 극상품의 포도주 맛이 나는 것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습니다. 하인들은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원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선한목자 예수님은 우리들이 영생을 누릴 생명을 주실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행복한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행복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 꽉 찬 느낌, 참된 만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로 채울 수 없고, 명성으로 채울 수 없고, 지식으로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내 삶에 채워질 때 참된 만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가 함께 하면 모든 것이 꽉 채워지는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이 주는 행복입니다. 세상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인 만족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이런 기쁨의 고백을 합니다. 빌립보서 4:11-12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복음이 주는 삶의 만족감을 얻는 비결을 배울 때, 비로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고백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이런 것입니다. 세상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영원한 행복감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만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고백이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고, 멸시하기까지 합니다. 바울이 예수 만나기 전에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결례를 위해 떠놓은 물항아리에 비춘 자신의 죄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손을 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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