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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복음의 승리 | 김병수목사 | 2019-02-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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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복음이 주는 승리 누가복음 5:3-6(신 96)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현대인들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상실감을 느낍니까? 뭔가 있을 것 같으나 남는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기대한 것이 실망감을 주는 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허무한 일들이 너무 많기에 상실감을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를 호령하던 제국의 황제도 허무하게 역사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도 북한을 다루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우리 앞에서 당당하던 사람도 알고 보면 크게 의지할 사람이 못된다는 것이 허무하게 합니다. 사람의 생각, 경험, 이성, 능력, 소유, 지식은 허무한 상실감을 줍니다. 왜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고, 절망하고, 자살을 선택합니까? 세상에 믿을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땅에 있다는 것, 우리가 아직도 교회를 찾는다는 것은 교회가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우리에겐 아직도 교회가 있고, 그 안에서 유일한 복음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복음은 인생의 암담한 현실을 이기는 힘입니다. 본문 5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복음은 상실감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 위해 수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 인생의 허무를 경험하였습니다.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고기잡이가 내 뜻대로 되지 않게 되었다는 절망과 좌절을 경험한 시기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베드로는 복음을 알게 됩니다. 실망되고 절망적인 새벽을 맞았지만 예수님이 옆에 있어도 그래도 의지할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위대한 발견입니다. 한 인생을 살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렇지, 내가 처한 현실은 이렇게 허무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깊은데 내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기 철학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철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의 철학은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를 굴복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생각을 철학으로 가지는 사람은 절대 복음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내가 한 번 믿은 것은 머리에 피투성이가 되어도 바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의 철학으로 똘똘뭉쳐 있는 사람은 복음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끝까지 버티다가 자신의 철학을 내려놓았습니다. 베드로는 철저하게 무너지는 순간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냐하면 ‘스토아철학자들’입니다(행17:18). 그들은 금욕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참고 견디는 일에 달인입니다. 그들의 철학은 끝까지 참고 견디고 굴복을 거부하는 철학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는 것은 비굴한 것이라고 여기는 꼿꼿한 사람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나이 정신이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즐거운 일이 있어도 웃지 않고, 슬픈 일이 있으면 입술을 깨물어 버립니다. 절대로 자기가 믿는 신념을 놓지 않습니다. 그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죽는 것이라 여깁니다. 철저하게 삶을 통제하면서 늘 평정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이러한 철학자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기쁨도, 행복도, 승리도 없습니다. 굴욕적인 십자가를 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들은 십자가 지기 전에 죽이거나 자결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철학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고린도후서 10: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건이 있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주님이 없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복음에 귀를 막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인생은 승리를 맛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끝까지 버티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용기를 내어 자기 고집을 꺾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자 인생역전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6절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렇게 하니’는 무엇입니까? 5절에서 ‘내가 밤새 고기 잡으려고 수고했지만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깊은데 내려보겠습니다’는 말씀입니다. ‘내 생각은 다르지만 그래도 말씀에 의지해서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절대로 복음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복음의 혜택만 누리지 못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우선 믿어야 합니다. 그 후에 복음의 혜택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그물을 깊은데 던지지 않았다면 고기를 거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기가 심히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달콤한 사탕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먹을 때는 달지만 아무런 건강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탕발림이 아닙니다. 복음은 실제적으로 우리들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실제적인 삶의 도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상실감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실제적인 말씀입니다. 인생의 상실감을 이겨내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 인생의 방향, 인생을 의지할 것이 없다면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여 인생의 그물을 내려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찬란한 영광이 무엇입니까? 본문 7절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줍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좋은 소식입니다.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사람의 기질이 외형적이든 내성적이든 상관이 없이 복음이 되는 것이 신비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복음은 다혈질의 베드로에게도 복음이고, 우울질의 사도바울에게도 복음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신비하지 않나요?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동일하게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이방인에게도 죄인들에게도 구원을 주시십니다. 사람의 능력은 모두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의 능력은 기껏해야 한쪽만 살게 합니다. 반대편을 죽여야 내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은 싸움이 끊이지 않고, 분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몰랐을 때 사람의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발판으로 삼아서 자기 이름을 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왕으로 등극하시면 수제자인 자신은 총리가 되리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다는 예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말은 베드로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청천벽력 같은 비극적 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격하게 말렸습니다.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십자가 따위는 잊어버리세요”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짓밟지 마세요.”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갈립니다. 희생의 십자가를 대하는 태도가 주의 종과 세상의 종의 차이를 만듭니다. 교회의 일은 십자가를 지고 섬기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들은 내 꿈을 펼치기 위하여 십자가를 등지는 사람의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발판으로 삼아 내 성공을 이루려는 목적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예수는 내 인생의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인지 사람의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모두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한쪽의 승리는 복음의 일이 아닙니다. win-win을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복음은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신비하게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모두를 만족하게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살립니다. 복음을 믿으면 싸우는 사람이 화목하게 되고, 나뉜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힘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철학적이거나 사변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열매를 거둡니다. 베드로처럼 믿으면 그물이 가득차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복음의 열매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줍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한 쪽의 승리, 반쪽의 승리는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열매를 거두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한 쪽의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은 복음의 열매가 아닙니다. 복음의 열매는 모두를 만족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이길 힘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영웅,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들은 사라졌으나 십자가 복음은 아직도 승리를 선포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만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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