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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왜 구원의 복음인가? | 김병수목사 | 2019-0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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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왜 구원의 복음인가? 에베소서 2:8-10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는 말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말은 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소서”라고 말하면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입니다. 타락한 이후 사람의 모습에 대하여 어떤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죄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공감하십니까? 아이들을 키워보면 압니다. 한 살 때까지는 ‘엄마 아빠’를 배웁니다. 두세 살 정도 되면 아이들이 배우기 시작하는 말을 보면 ‘싫어’ ‘안 되’ ‘미워’ ‘내꺼야’ ‘너 집에가’이런 말을 합니다. ‘알았어요’ ‘사랑해요’ ‘가지세요’ ‘미얀해요’라는 말은 거의 안 씁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악한 마음이 품어져 나옵니다. 예절은 가르치기 어려워도 욕은 저절로 배웁니다. 그냥 두면 잘 되는 방향으로 절대 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죄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합니다. 잘 훈련되고 양육되지 않으면 튀어나오는 것이 죄입니다. 최근에 멕시코에서 송유관 화재사건으로 100여명이 죽었습니다. 송유관을 뚫어서 석유를 빼돌리다가 터져서 석유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너나없이 통을 들고가서 기름을 담습니다.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들었고 송유관이 불에 붙어 수많은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엄청난 불기둥이 치솟았고 화마가 주변사람을 삼켜버렸습니다. 화염에 휩싸인채 뛰쳐나오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나중에 한 실종자 어머니가 말합니다. 그 날 그런 일은 나쁘니 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무시한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잠언 29: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능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합니까? 죄는 하나님 말씀을 떠나 눈에 보이는대로 본성에 이끌려 사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지을 때처럼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한 선악과를 먹으려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는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내미는 것이 본성입니다. 순서를 기다리다가도 내가 끼어드는 것은 다 이유가 있고, 남이 끼어들면 질서 파괴범처럼 여기며 화를 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땅에 죄와 구별된 거룩한 교회를 세워 거룩한 백성들을 불러모아 구원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교회가 십자가를 높이 세우는 이유는 주님의 십자가 희생만이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십자가 복음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만이 타락한 인간본성에서 돌이켜 나가야할 분명한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오직 복음을 들어야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다른 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족, 민족, 교회, 나라를 살리는 절대적인 길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도 오직 예수 오직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가장 우선되는 일이며,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복음에 대한 찬양과 감사가 살아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쇠퇴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시기에는 구원에 대한 열망이 식어질 때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두 번째 세 번째로 중요하게 되는 순간 교회는 힘을 잃게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죄인들이 구원 받도록 하는 일이 일어나야 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미국교회가 쇠퇴한 시기를 보면 구원의 복음이 식어지는 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미국교회가 구원의 복음이 아니라 복지사회의 복음을 말하면서 점점 교회의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복음이라고 외치면서 교회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영혼을 살리는 일에서 몸의 편리함과 윤택함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생각이 병들게 되었습니다. 영적 가치관, 세계관이 세속화되면서 교회는 급속하게 세속화되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최상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정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의 기준입니다. 아무나 구원 받는 것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교회에 사람을 오게 하면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정확한 복음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구원받는데 있어서 믿음이 중요하지만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나면서 어느 기간이 지나면 세례를 받고, 자라서 결혼하고 혼인성사, 임종시에 기름부음을 받는 종부성사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만일 출교를 당하면 그 영혼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게 합니다. 교회에서 제시한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두려운 마음을 심어 교회생활, 신앙생활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16세기에 루터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만을 말하였습니다. 구원의 문제에는 인간의 중보자가 개입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받게 되는 은혜의 구원, 구원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에 얼마큼 기여하느냐에 따라 교회가 다른 의견을 말합니다. 순복음과 감리교는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구원이 절대적이지만 사람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기준에 있어서 행위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을 가진 교회들은 행위가 살아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려면 내 행위와 노력이 함께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장로교 신앙은 절대적인 구원의 기준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또한 5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8-9절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에 있어서 우리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적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 행위가 0.0001%도 협력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구원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이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타락한 존재인가, 우리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면 우리가 완전히 타락하고 망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속에 없다’고 단정하셨습니다(요5:42). 그래도 사람이 선한 구석이 조금은 있겠지요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죄인은 아무리 작은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 앞에서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은 타락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존재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고, 세상의 풍조를 따라 행하며,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며, 결국 사망의 길로 가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셔서 값없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것이 구원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믿었으니까 구원 받았지 않습니까? 그 믿음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그래도 나는 구원 받을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치 않습니다. 로마서 4:2-8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믿는 것이 내 공로가 되어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것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순종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구원은 믿었기에 보상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 오직 복음만을 외치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후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느냐가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구원 받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루라’는 말은 ‘광산에서 췌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캐내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거두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이미 주어졌으니 구원 받은 사람으로써 모든 은혜를 거두고 누리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광산에서 보물이 있는데, 조금 거두거나 많이 거두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이제 구원 받았으니 맘대로 살고 싶다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이고, 이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 이루어 열매를 가득 거두는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항상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은혜를 더 크게 더두기를 바랍니다. 본문 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은 예수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통하여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교회는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몸이 자라도록 하여 열매를 맺게 합니다. 구원은 단순히 만족하고 기뻐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말아야할 복종과 두려움과 떨림이 있는 것이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간절한 소원을 갖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지키는 것이나 보존하는 것에 있지 않고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많은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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