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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메시아 | 김병수목사 | 2018-1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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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둘째 주 평화의 예배 (12월 9일) 10 전능왕 오셔서 112 그 맑고 환한 밤중에, 유초등부 특송, 413 내 평생에 가는 길 평화의 메시아 이사야 9:6-7 (구 978)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대림절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발견하는 매우 중요한 교회의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은 아기 예수가 진정한 왕으로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크신 왕으로 오셨습니다. 본문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1)동정녀 몸에서 나시는 분 2)어께에 정사를 메심(위엄과 권위 소유) 3)기묘자(탄생, 생애, 사망, 죽음, 부활, 승천) 4)모사(모든 구원의 계획을 구상하시고 이루시는 상담자) 5)영존하시는 아버지(예수 그리스도의 신격, 하나님으로써의 신성) 6)평화의 왕(주님의 통치가 평화로움) 누가복음 1:31-33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아기 예수를 메시아 신앙으로 고백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반드시 큰일을 행하실 것이라 외치는 성도에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사가랴도 세례요한의 출생을 말하면서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이로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이 메시아를 대망하는 첫 번째 대림절의 일관된 신앙고백입니다.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분명하게 들은 바를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고백한 후에,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다’(눅1:50)고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대림절 동안에 우리가 크게 불러야 할 찬양의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2:13-14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메시아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며 사람에게 평화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대망하는 아기 예수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왕의 탄생, 메시아의 오심을 분명히 선언하는 말씀입니다(눅1:31-35).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지고 오신 왕이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 계신 예수님은 불쌍한 아기 예수가 아니라 크신 예수, 높으신 예수, 위대한 예수, 다스리시는 예수, 영원한 예수임을 믿습니다. 이 대림절에 우리 마음에 왕 메시아 대망의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대림절을 통하여 세상을 향하여 ‘메시아가 오신다’ ‘세상의 왕이 오신다’고 외치며 찬양해야 합니다. 오늘은 메시아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 이루신 평화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세상의 평화는 십자가 복음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평화는 누가 가지고 왔습니까?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셨을 때 세상을 지배하는 나라는 로마였습니다. 그 로마는 강력한 군대의 힘을 가지고 전 세계를 다스렸고 200년이 넘도록 세계를 피의 지배로 평정했습니다. 세계 질서의 수호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나라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모든 세계가 로마로 통하는 시대를 향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멸시했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인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네로왕은 수많은 군중이 모여 있는 운동장 한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치욕스럽게 벌거 벋겨 죽이고, 굶주린 맹수를 풀어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의 평화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멸망의 이유가 다양합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지키기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 드리고 경제 파탄으로 멸망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타락한 목욕탕문화로 전염병이 확산되어 멸망했다고도 합니다. 그들은 결국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명에 의해 십자가 앞에 항복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진정한 왕으로 모신 것입니다. 오고가는 인류 역사의 평화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의 손에 있음을 세상이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십자가로 이룬 참 평화를 세상에 전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말하는 평화는 세상의 것과 다르며 진정한 평화입니다. 평화는 칼과 창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삼상17:45).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진정한 평화가 무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칼과 창의 힘이 아니라 복음의 힘, 십자가의 힘만이 세상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유일한 평화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그 평화는 십자가 사랑으로만 지켜질 수 있습니다. 대림절의 평화정신은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이 평화를 가지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평화의 메시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대림절에 해야 할 일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평화이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평화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가지고 오신 세상의 참된 평화가 왜 십자가로 지켜지는 것입니까? 진정한 세상의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지켜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구원을 위한 위대한 계획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야만 어둠의 권세를 정복하고(골2:15, 갈3:13) 평화를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말하고 강력한 메시아의 리더십을 말하는 이유는 진정한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이 땅의 평화는 하늘의 영광이 드러날 때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영광인 메시아의 탄생이 이 땅의 평화를 가지고 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탄의 밤에 목자들이 예수 탄생을 목격하기 위해 갈 때에 엄청난 표적을 보았습니다. 둘째, 성도의 평화는 구원의 감격에 있습니다. 성도는 무엇으로 참된 평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까?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감격스럽게 느끼고 경험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심으로 우리에게 이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평화의 메시아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절망적인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으심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 구원의 위대한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십자가 복음으로 자기 의와 싸워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에게 영광 돌리는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메시아의 평화를 누리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이라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주인 되심(Lordship)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평화와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면 그것은 반드시 주변에서 남모르게 도와준 분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분이 부모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감춰진 사랑, 헌신적 돌봄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불효자와 효자의 차이 무엇입니까? 그 부모의 사랑이 머리에서만 맴도는 사람이 불효자요, 가슴으로 느끼고 감사하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일어섰다는 생각을 하면 감사할 일이 없습니다. 부모가, 이웃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높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된 것이다. 이것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지금의 나의 평안은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라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실이구요. 하나님 은혜에 대한 믿음의 문제도 같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다 압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아는 성도가 있고, 가슴속 깊이 느끼는 성도가 있습니다. 은혜를 지식으로만 아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합니다. 일만달란트를 용서 받았는데, 돌아서서 100데나리온 빚진 자의 멱살을 잡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처럼 율법주의로 빠지고 정죄하는 신앙으로 나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 공로로 내 영광으로 빼돌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고 체험한 성도는 하나님에게 진정한 감사를 드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십자가 은혜가 너무 크기에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게 됩니다. 성숙한 성도님들은 이 고백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아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미숙한 성도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나의 노력의 결과라 한이 없는 나의 열정 어찌 이루 말하랴”라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무엘상 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블레셋의 침략에서 막아주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하면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에벤에셀 하나님이시다. 내가 정치를 잘해서, 능력의 기도를 드려서, 내가 지혜로운 지도자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블레셋의 침략을 이기고 나라의 평화를 주신 하나님에게 공을 돌리는 것입니다. 나의 평화, 민족의 평화는 하나님의 몫이다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철저하게 그분의 은혜의 결과라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롬5:8). 하나님을 바르게 찾을 때 진정한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길을 찾아 주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 나갈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해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평화는 화해의 관계에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10-11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악한 권세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를 완성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이시다’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화목한 관계를 허락하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입니다(고전1:18-25). 내 마음에 평화가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신앙이 흔들려서 그렇습니다. 죄가 내 영혼과 마음을 격동시킵니다. 하나님을 저항하도록 하는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혼돈과 전쟁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원수를 격동시켰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9:11-12 1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의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12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하나님이 이방나라를 격동시켜서 앞뒤고 이스라엘을 쳐도록 하십니다. 한 나라의 평화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 사업, 가정,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바르게 풀어나가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더 높고 견고하게 세우시기 위하여 훈련을 하십니다. 실패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평화가 없이 늘 전쟁으로 하나님의 채칙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항상 내 마음이 전쟁터와 같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내 마음에 갈등이 있고, 선과 악이 씨름을 하고, 행복과 불행이 시간마다 뒤바뀌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이 영과 육의 씨름판이 벌어지고 있는 사람은 평화가 없습니다. 그 마음에 죄가 다스리는 사람은 항상 마음이 전쟁터입니다. 주님이 다스려야 하는데 욕망이 다스리고, 육정이 성령을 대항하니 평화가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지 못하고 죄가 다스리므로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렵고, 불만으로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요한일서1:9-10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면 모든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앃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가정, 경영하는 일을 굳게 세우시고 보존하시려고 지금도 일하십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아와 말씀에 순종만하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실 것입니다. 복음이 아니면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성령이 다스리지 않으면 우리는 이 절망에서 헤어나올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가 내 마음을 다스리고 성령 충만하여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그 왕이 다스려야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화해의 메시아를 대망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절기입니다. 그 관계가 우리들의 존재성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신분은 세상의 것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어떤 지위에 오르고 얼마나 유명한 자인가가 우리들의 자존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자존감이며 자신감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만으로 만족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누리지 못해 잃어버린 평화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해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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