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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나를 기념하라 | 김병수목사 | 2018-1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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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주일오전예배(성례주일) 나를 기념하라 누가복음 22:17-20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 달은 ‘감사의 달’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먹이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달입니다. 다음주는 논과 밭에서 거두어들인 소출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올해는 110년만의 더위로 인하여 곡식이 풍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둘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는 여러분만 오지 마시고 친인척, 자녀, 이웃, 친구 다 불러 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온 마을의 잔치가 되고 감사의 날이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한 분이라도 새로온 성도가 교회에 와서 감사축제의 감격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서 준비해야 겠습니다. 감사에도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마시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예물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이 단지 물질적 축복이나 건강하게 해 주셔서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영혼에 베푸신 은총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성만찬으로 나누는 ‘성례주일’을 지키며 영적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나누시면서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본문 17절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9절에도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라 말씀하셨습니다. 잔을 받을 때도 감사 기도하시고, 떡을 떼실 때도 감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떡과 잔을 드시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자신의 몸이 찢기는 아픔, 피흘리는 고통의 잔을 마셔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희생이기에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떡을 주심에 감사하고 잔을 주심에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리시고 피를 흘려주셔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례주일을 통하여 성찬식을 나누며 영적 감사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습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에 대한 감사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물질문제, 건강문제, 삶의 문제로 감사하지 못하고 불만과 불평으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문제로 감사하려면 현실문제에서 잠시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여유가 필요합니다. 큰 나무 앞 5센티 앞에서 바라보면 나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오래 보고 있으면 아무런 감각도 없어집니다. 삶의 문제에 대하여 너무 조급하거나 불안하거나 근심하게 되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삶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집착하면 방향을 잃고 감각을 잃어서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을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삶의 나무를 바라보려면 그 나무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관망적 태도로 바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왔다는 것 차체가 현실과 멀리 서서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데 큰 힘을 줍니다. 삶의 문제에서 아무리 찾아도 감사할 것이 없어도 영적 감사로 나가면 모든 것이 감사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의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구원 받은 영혼의 만족과 감사가 넘치는 주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감사 기도를 드리시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하셨습니다. 본문 19절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영적 감사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떡과 잔을 나누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몸과 피를 흘려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전체적 그림을 보면 창세기 첫 책에 “죄”의 문제가 나오고 그 죄의 문제로 인해 인류가 불행의 길을 가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불순종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의 댓가는 참혹하여 모든 인류가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고 그 죄로 인하여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나님은 불행해진 인류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믿으면 구원에 이르게 된 줄 믿습니다. 내 행위와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어떤 공적을 쌓았는지 상관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부유하고 학식이 있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감정에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믿으면 구원 받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크신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저는 지난 주간 여러분의 기도로 무릎 철심제거 수술을 잘 받았고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퇴원수속을 마친 후에 바로 극장에 갔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사도 바울’ 영화가 마지막으로 상영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약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맑은 정신은 아니었습니다만 바울의 삶을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믿음이 좋을수록 세상에서 더 큰 고난이 온다는것입니다. 대충 믿거나 세상과 타협하는 믿음은 고난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편하게 믿으려면 얼마든지 고난을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피하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난을 내 믿음의 중심에 새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이 찢기신 살과 흘리신 보혈의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를 지키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들은 그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에 그 십자가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거짓을 위하여 죽을 수 있습니까? 참된 진리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 줄 힘과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문자가 떴습니다. 보니 태풍주의보로 인하여 목, 금요일까지 배가 출항할 수 없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금요일에 들어와야 하는데 처음 당하는 일이라 당혹스러웠습니다. 급하게 장로님들께 연락을 드렸더니 편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백령도에 살면 당연히 있는 것인데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어떻게 쓸까 생각하다가 다음날 부천에 있는 서울신대에 들어갔습니다. 평소에 백령도 신앙을 전수해준 선교사님들의 초기행적을 찾고 싶어서였습니다. 가장 먼저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 귀츨라프 선교사님, 개신교 최초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님, 장로교 선교의 장을 넓힌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모두 백령도에 다녀가셨다는 자료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찾으면서 작은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충분히 백령도 초기 선교사님들의 행적이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중에 원로장로님, 은퇴장로님, 은퇴권사님, 집사님들이 증거들인데, 그것을 역사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하나님이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선교사님들이 우리에게 기념하라고 남겨준 것은 ‘성경책’ 한 권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책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은 고난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러브스토리입니다. 어떤 신이 세상에 나를 위해 죽을 수 있습니까? 모든 신은 인간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다가 사망에 이르러 죽었습니다. 죄없으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어떤 신이 이런 은혜를 베풀 자격이 있으며 그것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형틀은 패배가 아니라 공의와 사랑의 승리의 장소입니다. 고린도후서 5:19-20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축복을 나누게 됩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화목의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신 주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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