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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성경! 오직 믿음! | 김병수목사 | 2018-1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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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주일오전(종교개혁주일) 오직 성경! 오직 믿음! 로마서 1:15-17(신 239)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은 501주년 종교개혁주일입니다. 500년 전에 종교개혁자들이 타락한 구교회에 저항하여 개신교 신앙을 세운 날을 기념합니다. 그 역사를 우리가 되새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도 다시는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갖지 않도록 겸손히 자신을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구교회가 잘못되었고 우리가 좋은 신앙이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진정한 교회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갖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 과거의 아픈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하여 우리는 겸손히 역사를 살펴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지금이 중요하다’며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절대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모른척하고 넘어가지 말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것을 고치고 가야 다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고 좋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독일과 일본은 과거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죄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과 일본이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독일은 철저하게 수상이 무릎을 꿇고 잘못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절차를 밟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아직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픔을 당한 사람이 그 아픔을 씻을 때까지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른척한다고 과거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돌아보는 겸손한 자세를 가질 때 미래가 열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역사의 시작과 끝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래서 처음 아담이 지은 죄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덮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해결하고 가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용서 받고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한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복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종교개혁정신은 이 복음의 은혜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가 살 길을 열어 주었다는 ‘오직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진 은혜의 복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역사는 500년이나 묶은 교회 역사를 다시 뒤적거리는 정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더 밝아지기 위해서 반드시 문제점을 해결하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며, 참된 성도가 되는 길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사도들이 세우고자 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곁길로 갈 때에 개혁을 일으킨 쯔빙글리, 루터,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다시 한번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개혁 정신, 교회의 본질이라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첫째, 오직 성경! 종교개혁의 정신은 ‘오직 성경!’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 세워진 말씀으로 건축된 곳입니다. 그래서 말씀에서 벗어나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잘못된 교회는 말씀을 외면하고 가치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높아진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높은 사람이 문제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교황은 하나님 말씀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무리 교황이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말씀을 받고 안받는 것을 결정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죄사함을 선포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죄사함의 증서가 ‘면죄부’입니다. 이것을 교부받아야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든 사람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씀을 모르니 그런가보다하고 따른 것입니다. 나중에 성베드로성당을 짓기 위해 돈이 부족했습니다. 면죄부를 돈을 모으는데 활용했습니다. 죽은 사람, 일가친척의 죄를 씻기 위하여 면죄부를 돈을 주고 사는 있어서는 안될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우리 죄를 돈으로 씻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모르니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루터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다가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으로 구원 받은 것이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씀을 보니까 구원의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이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로마 교황청과 진리의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루터는 교황 앞에 불려갔고 승복하면 살려주고 불복하면 처형을 받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루터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저버리고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교황청으로부터 처형소식을 들은 몇몇 성주들과 지인들이 루터를 빼돌려서 작은 성으로 피신시킵니다.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Castle)작은 방에서 그는 10년간 어려운 라틴어성경을 쉬운 독일어성경으로 번역합니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쇄술을 발달하게 하셔서 그것들을 다 인쇄하여 독일을 말씀으로 새롭게 하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독일 사람이 이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을 믿어 구원도 얻었지만 글자를 깨우쳐서 일찍이 최고의 문명국이 되었습니다. 오직 성경이 야만족의 후예들을 변화시켜서 지금의 독일을 만든 것입니다. 누가 죄사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무엇으로 압니까? 말씀을 보고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교황과 교회가 사람을 불러서 죄사함을 선포해야 죄인이 용서받은 줄로 확정합니다. 당시에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선조들은 바이킹같은 야만족들이었습니다. 거기에 복음이 들어가서 지금 같은 최고의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초대교회 7교회를 세운 지금의 터키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책망 받은 후에 믿음에서 파선하여 지금은 이슬람국가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하고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 길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Back to the Bible!).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늘 복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 백령도의 부흥과 발전은 백년전 선교사님들이 들고 온 복음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 복음의 말씀이 이 땅에 뿌려졌고 우리 선조가 믿어 교회를 세웠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선조들의 헌신으로 맺힌 열매를 우리가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거부했었다면 이 땅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상숭배와 각종 미신과 굿판이 벌어지는 영적으로 타락하고 폐쇄적인 땅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교사님들에게 복음의 말씀, 성경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것을 이 땅에 전달해 주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헛되이 쓰이는 역사가 없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도록 거대한 제국 로마가 길을 딲게 하셨습니다. 1816년, 지금부터 200년 전에 영국함대 맥스웰, 바실 홀 대령들이 서해를 다니며 지도를 상세하게 그렸습니다. 그리고 35년 뒤에 독일의 귀츨라프 선교사가 이곳에 그 길을 따라 왔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처형당하면서도 성경책을 전해 줍니다.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이곳에 와서 허득공, 허간목사님이 세례를 받고 교회를 세우고, 그 분이 세운 교회가 중앙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는 일을 통해 북한선교의 길을 여실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말씀!’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민족의 허리, 중심역할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말씀의 역사입니다. 사람의 뜻은 헛되이 돌아가지만 말씀은 역사를 세웁니다. 우리가 말씀위에 서면 하나님이 우리를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하십니다. 오직 말씀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둘째, 오직 믿음!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오직 믿음만을 외쳤습니다. 오직 예수만 믿으면 산다는 신앙이 교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시대의 위기입니다. 우리가 시선을 세상에 빼앗기면 믿음에서 파선합니다. 아무리 풍랑이 이는 파도의 위협이 있어도 예수님이 있으면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예수에게 집중하는 믿음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루터와 칼빈은 이 믿음의 싸움을 하였습니다. 카톨릭에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여 사함을 받는 일입니다. 죄에 대해 얼마나 철저했는지 모릅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선임 신부님을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굶주린 이웃을 생각해서 빵한조각을 아껴야 하는데 배고파서 한조각을 더 먹은 것이 너무 죄책감이 든 것입니다. 이런 일로 너무 자주 오니까 선임 신부님이 그랬다는 겁니다. “제발 나가서 제대로 된 죄를 짓고 그 때 다시 오시오”라고 루터에게 짜증을 냈다는 겁니다. 아무리 금식기도를 많이 하고 수련을 해도 죄책감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루터를 정말 사랑했던 한 신부님이 루터에게 이제 조언합니다. “루터 이제는 제발 고해성사만하지 말고 성경을 보시게! 성경을 연구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루터가 성경을 읽다가 오늘 본문 17절에서 자신의 처절한 죄의식의 굴레를 벗어 버립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몰랐을 때는 자신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율법을 어기고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처형하는 일까지도 앞장을 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 나를 건져내랴’(롬7:23)하고 절규하였습니다. 더러운 죄악을 씻어 버리기 위하여 처절하게 몸부림쳤으나 더 곤고해지고 사망의 올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구원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은혜가 크기에 열심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행이 아니라 믿음이 먼저입니다. 은혜가 먼저 임했기에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입니다. 교회개혁은 먼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개혁은 교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바꾸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를 바꾸면 교회가 개혁되고 교회가 바뀌면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변화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교회를 개혁하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 몸을 먼저 치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내려놓을 때 교회가 세워집니다. (고후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행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골로새서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오늘날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교회, 내게 유익이 되는 교회를 찾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먼저 생각하고, 교회를 먼저 사랑하고 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루터는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교황청에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주장을 철회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떠나고 믿음에서 탈선한 것을 파협하는 것보다 자신이 고난 받는 것이 낳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교황청과 맞서 싸웠습니다. 포기하면 용서를 해 준다는 말을 교황청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바 되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이 양심을 버리는 일은 옳은 일도, 안전한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고린도후서7: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그는 저항했습니다. 그 저항정신이 프로테스탄트 개혁신앙, 저항신앙 개신교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 교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저항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한 것입니다. 믿음의 싸움입니다. 내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내 권리, 내 유익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함께 사는 길이고, 교회가 세워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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