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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나사로를 보내소서 | 김병수목사 | 2018-10-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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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의 사이즈와 화질은 500kbps, 중간화질입니다. 영상은 업로드 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주일오전예배 나사로를 보내소서 누가복음 16:27-31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미국에서 아는 장로님이 나무로 집을 짓는 과정을 권해서 잠시 배운 적이 있습니다. 집은 설계한대로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 집을 지을 때 중요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남는 목수의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 번 자르기 위해 두 번 재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목을 생각없이 대충 눈대중으로 자르고 나면 두 번 다시 고쳐서 쓰질 못합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둘째는 “잘 박힌 못이 천근을 지탱한다”는 것입니다. 모을 아무데나 박는다고 집이 견고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바른 생각의 방향을 가지고 갈 때 집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살도록 생각의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 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주셨습니다. 마구 인생의 집을 짓다가는 되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나가면 안됩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거룩한 성도가 되기도 하고 불행한 죄인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생각없이 인생의 집을 마구 지으며 살다가 낭패를 당한 사람이 나옵니다. 한 부자는 3무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3가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첫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본문 19-21절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사람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돕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삶의 만족을 채우는 일만 생각했습니다. 행복한 삶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실패한 부자의 삶이었습니다. 사람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도덕성). 부자는 가난한 나사로를 학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하여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무관심한 것입니다. 본문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나찌 정권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전범으로 국제재판을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 중에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1961년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직접 사람을 죽인일도 없었습니다. 유태인들을 수용서로 실어 나르는 수송부서의 책임자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 관한 책을 썼는데, 그의 죄는 사람을 수용소로 수송한 것이 죄가 아니라 진짜 무서운 죄는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수 많은 사람이 수용소에서 당하는 고통에 대해 아무런 감각도 없고,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무관심, 무사유 사람이 살든지 죽든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이 죄라고 말했습니다. 참 애매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런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잘못되 나사로에게 범하지 않았지만 그가 버려진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 몸부림치며 개들과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도 전혀 아픔을 느끼거나 불쌍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주의 일로 바빠서 돌봐주지 않은 무관심한 죄,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감각한 마음을 가진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이히만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이 자신의 성공과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팽배한 사회입니다. 인간관계의 기초는 ‘관심’입니다. 사람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본문 25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정말 잃지 말아야할 것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웃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그들의 고통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난 받는 이웃에 대하여 감각없이 바라보고 내 좋은 것을 받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무책임한 행동, 무자비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더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날씨가 차가와 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좋은 것을 받아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어려움에 처한 지역 주민들, 외지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돌보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우리는 자원이 많은 교회라서가 아니라, 많은 자원을 나누는 교회이기에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을 더 섬기고, 새가족들을 더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인생의 끝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죽음과 그 이후의 영생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부자는 인생을 살면서 끝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22절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우리는 아직 끝이 멀었다고 생각될 나이라고 하여도 그 끝을 생각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무한한 행복도 없고, 영원한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간같이 지나가는 유한한 인생입니다. 아무리 잘 살았든지 못 살았든지 끝은 동일하게 옵니다. 모든 인생은 끝이 있으며 영원한 세계가 기다립니다. 사람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 누구나 영원한 세계를 살게 됩니다. 본문 23-24절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본문에서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가고,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는 곳입니다. 지옥은 말하기도 끔찍한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입니다. 생각도 하고 싶지 않는 곳입니다. 말하기도 민망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절대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 지옥을 말하시는 이유는 누구도 지옥에 가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지옥입니다. 미국에서 욕은 매우 영적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을 들먹거리는 욕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에 가장 잔인한 욕입니다. 영원한 고통에나 빠지라는 말은 우리들의 생각에도 입 밖에도 나오면 안 되는 말입니다. ‘라가라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우리의 입 밖으로 형제를 향하여 화를 내거나, 지옥에나 떨어지라 욕하거나, 미련한 놈이라고 멸실하는 태도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천국갈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저도 집 앞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습니다. 바람에 날려 왔나, 누가 지나다가 버리고 가는가 왜 하필이면 집 앞에다가 버리는가? 생각을 하다가 지난 주말에 나오면서 지나가는 차에서 누가 버리고 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막 달려가서 ‘여보시오. 이거 가져가시오, 뉘집 앞이 쓰레기통인줄 아쇼’하려다가 참았습니다. 교회에 대하여 불만이 있는가 보다. 귀찮으니 대신 치워달라는가보다. 더 겸손하게 살라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성도와 교회가 더 존경을 받고 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혹시 손가락질 받는 일은 없는가? 더 열심히 이웃을 섬겨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화를 참았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지옥이 있으니 똑바로 살아라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한 영혼도 지옥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내가 가는 천국에 오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영혼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며 절대 천국에 함께 가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천국에 가게 될 줄 믿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천국이라는 인생의 끝을 향하여 모두 함께 나가는 분명한 방향설정을 하고 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말씀의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금 경청하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부자는 비로서 생각합니다. 내가 사람에 대한 생각을 못한 것, 인생의 끝날에 올 영원한 세계를 생각하지 못한 것, 그리고 그 때 전해준 주의 종들의 말씀들에 대해서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 것입니다. 본문 27-28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형제들이 이 곳에 올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옥만은 안되니, 나사로를 보내소서’ 그런데 아브라함이 전해준 말씀은 이러합니다. 본문 29-31절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지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에 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순종하세요.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전해준 사람이 누구냐하면 바리새인 서기관들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잘 믿는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세상의 물질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물질주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나중에 믿자는 생각,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는 생각, 말씀은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는데 나는 잘 믿고 있다고 자부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세가지 질문’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 답은 이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의에 충만한 율법주의자들, 돈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물질주의자들에게 지금 당장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들려주시는 말씀에 충실하게 반응하고 자기를 반성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새 삶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결론입니다. 우리가 우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며, 죽음이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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