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사유(牧會思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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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 이후 교회가 고립되지 않으려면 김병수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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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린도교회인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펜데믹을 경험한 세대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유럽의 흑사병처럼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몇 번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고 있는가? 교회가 그 답을 주지 못하는 가운데 세상은 교회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지난 100년간 한국 교회가 민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성장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교회는 거대해져 갔지만 건강한 공동체성을 이루는데 미약하다. 세상은 시대적 영향력을 잃은 빛바랜 교회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

 

목회자는 성도와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고 있는가? 강대상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지는 성경적 상황을 현실로 끌어내기에 버거운 현실이다. 신학생은 신학과 목회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한다. 성도는 점점 더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현실적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한가지 이유를 말하자면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총체적인 문화와 현실의 거리감을 좁히는 신학자와 목회자의 노력이 부족한 결과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신학계에서도 사회·문화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신학자들의 노력이 점차 인정을 받고 있다(엘버트 벨, 2020:36). 이러한 시도가 부족한 현상에 대해-전통적 텍스트 주석 연구가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앞선 지적이긴 하지만-웨인 믹스(Wayne Meeks)는 신약의 연구가 성경 이외의 다른 역사적 학문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저지(E. A. Judge)는 신약신학의 편협한 연구에 대해 학문적 영역에 있어 장애인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신학자들의 연구 방법론의 차이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려할 점은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현실적 삶의 빛이 되는 영감을 얻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다.

 

펜데믹 이후 갈 바를 모르는 세상에 대해 교회가 답을 주어야 한다. 이제 교회는 신음하고 있는 세상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하고 밖으로 나와 치료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 작은 출발을 위해서 이제 교회는 용기를 내어야 한다. 1세기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린도 교회인가? 세상과 격리된 교회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하여 신약시대의 고린도 교회를 조명하고자 했다. 그 중심에 목회자 사도 바울이 있다. 그가 그토록 몸부림치며 씨름했던 목회적 고민이 펜데믹 이후를 살아가는 목회자와 다른 바 없을 것이다. 시대의 문화는 바뀌어도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바울의 고린도 도시교회는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문제이다. 바울의 고린도 교회의 기록(text)이 곧 우리의 목회 현장(context)이다. 그래서 목회적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해석하기 위하여 1세기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린도 교회를 다양한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본 글의 목적은 펜데믹 이후 교회가 세상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는 길을 본질적 목회자, 바울에게서 찾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바울 목회가 생소하다고 말한다. 시대에 뒤떨어지게 2000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바울 목회는 시대를 초월한 본질적 목회를 통해 미래지향적 교회를 세운다. 목회 본질을 회복해야 세상의 복잡한 문제가 해결된다(6:1-4; 딤전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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