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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나라사랑 | 운영자 | 2019-06-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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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9:3-5절 개역개정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25전쟁 상기주일을 위한 설교 (방송실 점검으로 인하여 동영상이 준비되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6.25전쟁 69주년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수많은 상처를 이 땅에 남겼습니다. 지금도 이 땅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휴전 중입니다. 이곳 백령도는 지금까지 그 아픔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땅입니다. 해안 절경들은 철조망으로 둘러 있고 지척에 둔 고향땅은 그림에 불과합니다. 왜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땅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지켜주셨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습니다(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성경에 나온 과거 이스라엘의 교훈은 지금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면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면 또 다시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보여줍니다. 태평성대를 누리다가도 하나님을 잘 따르지 않고 각자 자기 소견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각종 죄를 짓고 범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사용하셔서 그들이 어려움을 겪고 핍박을 받게 하십니다. 이러한 절박한 과정 속에서 사사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달해 주어서 죄에서 돌이키도록 회개케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미쁘시사 죄를 용서하시고 이스라엘을 받아 주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 되풀이 되는 역사가 사사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사야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과 견줄 다른 신이 있었는가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수 많은 신들과 마술사들이 하나님을 흉내 내었지만 결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에게 임한 장자의 죽음을 막을 자가 없었지 않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떠도는 방랑객처럼 광야 길을 헤멜 때도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수없는 기적과 역사를 잊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쉽게 과거를 잊어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기도하러 간 사이에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아론의 나라사랑-백성이 원하는대로 이끌고 사람의 소견을 따라 살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환경을 따라 이렇게 저렇게 백성 비유맞추며 살아가다가 결국 우상앞에 절하고 방종하는 백성을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모세의 나라사랑-백성이 싫어해도 하나님의 뜻을 살아가도록 지도합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이 모세가 나라를 사랑하는 중심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모세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아론을 따르다가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절하는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큰 죄를 물으실 때 모세가 슬픔에 잠겨 이 말씀을 합니다.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리셔도 백성을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백성이 지은 죄가 크지만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면 교회 세례명부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리십시오. 교인명부에서 그 이름 자체를 지워버려주십시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져도 죽어도 자기 백성이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과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런 기도를 합니다. 본문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성도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단지 혈육에 대한 애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국애, 나의 핏줄에 대한 연민에 대한 집착이 아닙니다. 바울도 자기가 저주를 받더라도 자기 형제, 골육의 친척들을 살릴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를 잃어버리고 구원의 은혜를 저버린 민족을 안타깝게 여기며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단지 선민의식만 가지고 하나님 자녀의 특권만을 생각했습니다. 본문 8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사도바울이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역적인 사랑, 한 핏줄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중에 요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국가인 니느웨(지금의 이라크)로 보냄을 받습니다. 그곳에 가서 범죄한 나라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고 계시니 모두 회개하라고 전하라, 회개의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요나는 애국주의자였습니다. 자기 민족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 민족을 괴롭히는 이방나라에 대한 구원을 전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니느웨의 반대편이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물고기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깊은 회개를 하고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한 후에 요나는 그곳이 멸망하는지 아니면 하나님 사랑을 받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속마음은 다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요나도 애국자였습니다. 요나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요나는 자기 민족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원수나라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욕되게 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막아주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한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죄한 나라, 원수나라까지 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몹시 불쾌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이 매우 싫었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욘4:1). 요나의 강렬한 애국심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입장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백성이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못된 이방나라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맏아들처럼 탕자가 돌아오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심판을 받고 호되게 징계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받아주는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불의한 자를 받을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그 편협한 애국심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불의한 나라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완전히 분리되어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보수진영은 진정한 애국은 태국기를 들고 이북을 주적으로 알고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보진영은 평화를 깨는 보수진영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서로 물과 불이 되어 한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은 보수와 진보가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만이 나라를 하나되게 하는 힘입니다. 예수가 나라를 살리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여당은 야당의 협력이 필요하고, 야당은 여당을 도와 협치, 공생으로 가야 합니다. 서로의 역할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요나는 극도의 국수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유대주의, 선민주의에 빠져서 하나님 뜻 조차도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본문 4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여기서 바울은 유대인, 히브리인이라는 육신의 혈통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단지 육신의 계보, 핏줄에 대한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민족이 영적인 백성이 되지 못한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나라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예수를 믿어 양자가 되어 약속의 자녀가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진정한 나라 사랑은 하나님 백성 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 위에서 팔짱만 끼고 이 땅을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루신다. 그래서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이사야 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사람의 계획과 경영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수많은 생각만하다가 물거품이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또한 부득이 계획이 변경되어야 할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각을 반드시 이루며 경영하는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라의 운명은 하나님의 경영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만하고 지키지 않으시는 분아 아닙니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생각한 것” “내가 경영한 것‘을 포기한 적이 없으실 정도로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반드시 승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길은 오직 하나님이 알려준 방향으로 가야 안전합니다. 우리는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길을 버릴 때 인생의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기는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쉬운 길을 선택했을 때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의지했습니다. 앗수르 제국이 온 나라를 위협하자 나라들이 서로 동맹하여서 위기를 극복하자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작은 나라가 강한 나라를 이길 힘이 없으니 서로 손을 잡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지극히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구스와 동맹, 남유다-애굽과 동맹으로 앗수르를 대항하였습니다(사20장). 하나님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라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경제력, 군사력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주신 말씀을 반드시 이행하십니다. 이 땅에서 진정한 부흥은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이 도우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상 12:16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하나님은 일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일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며 앞장서시는 것을 잠잠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일할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잠잠히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어나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에 성공, 가정의 평안, 기업의 흥왕, 교회의 부흥, 민족의 번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예수님이 그 계획을 십자가에서 이미 성취하시고, 성령님은 그 계획을 지금도 이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계획을 반드시 시행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 절망의 땅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민족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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